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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도, 제주 방언의 이색적 드라마도 아니다.
    이 작품은 ‘부모’라는 존재에 대한 진심 어린 헌사이며,
    세대를 넘어 가슴을 울리는 삶의 기록이자 대한민국 부모 세대에 바치는 시이다.

    이 드라마는 이렇게 묻는다.
    “부모란 무엇인가?”
    그리고 아주 섬세하고도 집요한 방식으로 그 답을 펼쳐 보인다.

    1. 부모란, 희생을 본능처럼 감당하는 사람

    드라마의 주인공인 오애순은 시인이 되고 싶었다.
    그녀는 제주 시장 좌판에서 생선을 팔면서도 『창작과비평』을 손에 놓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꿈을 뒤로 하고,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다.

    그 순간부터 애순의 인생은 딸 금명을 위한 희생의 연속이 된다.

    • 식당을 차리고
    • 악성 손님을 견디고
    • 무시와 멸시를 삼키며
    • 딸의 등록금을 위해 자신의 삶을 깎아낸다.

    관식 역시 마찬가지다.
    육상 유망주였던 그는 가족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제주 바다에 남는다.
    애순과 딸을 위해 자신을 버리고 말없이 일한다.
    그는 묻지 않는다.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해?”
    그저 묵묵히 감당한다.

    이게 바로 부모다.
    자신의 삶보다 자식의 삶이 먼저인 사람.
    그걸 미덕이 아닌 당연함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2. 부모란, 이름을 잃고 역할이 되는 사람

    드라마가 시작될 때, 우리는 ‘애순’과 ‘관식’이라는 이름을 기억한다.
    하지만 회차가 진행될수록 그들은 엄마, 아빠로 불리기 시작한다.

    그들의 이름은 점차 사라지고,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빠’라는 호칭이 삶의 정체성이 된다.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다는 건,
    존재가 기능이 된다는 의미다.

    • 아이의 도시락을 싸는 엄마
    • 아이의 등록금을 버는 아빠
    • 아이의 문제를 대신 사과하는 부모

    《폭싹 속았수다》는 이 ‘이름 없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그리고 말한다.
    “당신은 분명 누군가였어요.
    꿈 많던 소녀였고, 바다를 달리던 소년이었죠.”

    3. 부모란, 사랑을 가르치지 않아도 사랑하게 되는 사람

    애순의 엄마는 말수가 적다.
    “사랑해”, “고마워” 같은 말은 드물다.
    하지만 딸을 위해 잠수병을 안고 바다에 들어가는 그녀의 삶
    그 자체로 사랑의 정의다.

    애순은 엄마를 생각하며 시를 쓴다.

    “점복 팔아 버는 백환,
    내가 주고 어망 하루를 사고 싶네.”

    이 시구에는 수천 마디 사랑보다 진한 감정이 담겨 있다.
    부모란, 말보다 행동으로 사랑을 가르치는 존재다.

    자식은 그 사랑을 나이 들어서야 이해한다.
    그리고 그 사랑은 늘 뒤늦게 가슴을 친다.
    “왜 그땐 몰랐을까. 그게 사랑이었다는 걸.”


    4. 부모란, 자신의 청춘을 접고 자식의 인생을 펼치는 사람

    아이유가 연기한 ‘젊은 애순’은 반짝였다.
    꿈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고, 말할 수 없는 열정이 있었다.
    박보검의 관식도 마찬가지다.
    순수했고, 열정적이었고, 가슴이 뛰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자식이 생긴 순간, 청춘을 뒤로 미룬다.
    그 청춘은 다시 펼쳐지지 않는다.
    남는 건 아르바이트와 빚, 절약, 희생뿐이다.

    부모란 그런 사람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줄이고, 자식의 이야기를 밀어주는 사람.
    자신의 가능성을 덜고, 자식의 미래를 채우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살아온 수많은 부모들의 청춘은
    누구에게도 말해지지 않은 채 사라져간다.


    5. 부모란, 무너져도 다시 일어서는 사람

    드라마 후반, 금명은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지만
    가난한 집안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모욕을 당한다.
    그녀는 위축되고, 좌절하며, 세상에 분노한다.

    이때 관식은 말없이 용돈을 보태고,
    애순은 자신이 운영하던 식당 지분을 정리해 유학 자금을 마련한다.

    그녀는 말한다.
    “나는 다 포기해도 돼.
    우리 애는 이렇게 살면 안 되지. 이젠 그만 물려주자.”

    부모란,
    자신은 망가져도
    자식만큼은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끝까지 버티는 사람
    이다.


    6. 부모란, 눈물을 숨기고 웃는 사람

    《폭싹 속았수다》는 부부 싸움도 다룬다.
    때로는 애순이 화를 내고, 관식이 무기력해지고,
    아이 앞에서 감정을 누르며 억지로 웃는 장면도 등장한다.

    그 장면은 너무 현실적이라 아프다.
    현실 속 부모도 늘 그렇게 산다.

    • 자식 앞에선 다 괜찮은 척
    • 속은 문드러져도 해맑게 웃으며
    •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걱정하며

    부모란, 자식에게 슬픔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자신이 아프고, 힘들어도
    그 모든 감정을 묻고 감추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7. 부모란, 마지막까지 자식의 미래를 꿈꾸는 사람

    드라마 말미에 등장하는 **관식과 애순의 노년 모습(문소리, 박해준)**은
    더 이상 힘도, 권한도, 능력도 없는 평범한 부모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은
    “우리 금명이 대학 졸업하면, 글 쓰게 도와줘야지.”
    “집은 없어도, 애는 안정적으로 살아야지.”
    라고 말한다.

    그들은 여전히 자식을 위해 미래를 꿈꾼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든 아니든,
    그 마음만은 변하지 않는다.

    그게 부모다.
    자식의 미래를 상상하는 게 삶의 이유가 되는 사람.


    8. 부모란, 결국 '폭싹 속은' 사람이다

    제목처럼 부모는 폭싹 속는다.
    사랑해도 배신당하고,
    키워도 떠나가고,
    다 줘도 고맙다는 말 하나 못 듣는다.

    하지만 부모는 말한다.
    “그래도 괜찮다.
    그래도 너니까, 괜찮다.”

    《폭싹 속았수다》는 그 말에 담긴
    부모의 본질을 찬찬히 보여준다.

     

    9. 결론 – 부모란 무엇인가?

    부모란,
    이름이 사라져도 기억을 남기는 사람이고
    청춘을 잃어도 사랑을 남기는 사람이며
    자신을 지우고 자식을 남기는 사람이다.

    《폭싹 속았수다》는 그저 감성적인 가족극이 아니다.
    이 작품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러나 지금도 곁에 있는 부모의 존재를 새삼 깨닫게 하는 인생의 기록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부모는 늘 그 자리에 있었어.
    우리가 모르고, 지나쳐왔을 뿐이지.”